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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스케줄
한국 해양사 연구소

◈ 관리자에게 ◈
 


마도로스 박 
제  목
 마도로스 스토리 / 내인생 가장 길었던 하룻밤...
글쓴이
 짐홀  / 2008-11-08  / 
1996년 6월 29일 원양어선 근무할 당시 엔진수리 작업도중 오른손이 절상되는 큰사고를 당하고 2달여 외국 (키리바티공화국 탕가루 병원)에서 치료하다 귀국하여 6개월간의 치료기간을 부산

메리놀 병원에서 보낸 나는 퇴원후 제주도에 내려와 4 달째 아무일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하는일 없이 빈둥 빈둥 허송 세월만 보내고 있을때 부산 에서 친하게 지냈던 선배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자리가 있는데 한번 해보라는 말과함께 부산에 가면 선배의 친형이 예인선업을 하면서 예인선에 기관장을 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다쳐서 손을 잘못쓰는데 다시 일할수 있겟냐고 물었다.
선배는 형에게 잘 애기 해뒀고 그리 힘든일도 아니고 엔진만 잘관리하면 된다며 지금 바로 올라가면 바로 승선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간 무료한 생활에 차츰 지쳐서 뭔가 다시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을때라 그리고 다시 선박 생활을 할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바루 올라가겟다고했다.

나는 그 선배의 도움으로 부산에 올라가서 배는 작지만 그나마 안정적인 직업으로 생활을 다시 할수 있게 되었다.

다시 일하게 될 예인선은 그당시 전남 광양 앞바다에 위치한 묘도라는섬의 채석장에서

교량 공사용 기초 피복석을 싫고 삼천포 대교 공사장까지 운반하는일로 임대되어 있었다.

선원이라곤 선장과 기관장 단 둘뿐인 총 톤수 65ton 밖에 안돼는 작은 배였다.


역동적인 예인선의 항해 동영상



예인선은 무동력선(바지선)을 끌고다니는 일을 주로 하는거라 내가 근무했던 예인선도 삼천포 대교 공사에 쓰이는 기초 피복석을 싫어나르는 3000톤급 바지선을  끌고 공사 현장으로 운송했다.

일도 힘들지 않았고 시간적 여유도 많치만 나이 지긋한 선장님과 단둘이서 선박내에서 생활 하는지라 심심하긴 했지만.
그 여유를 가끔씩 내가 좋아하는 음악감상에 대부분 보냈다.

바지선을 끌고 목적지까지 무려 9시간이나 항해하면서 선장과 나는 4시간씩 교대로 조타기를 잡고 예인선을 운전했다.

조타를 하는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주로 음악을 듣곤했는데 이당시 나는 좋아했던 첼로나 콘트라 베이스 연주를 자주 들었다.

망망 대해에서 홀로 떠다니는 배를 조종 하며 듣는 현악기의 감미로움은 그어느누구도 느끼지못할 것이다.

조타실에 진공관 앰프와 우퍼 스피커를 설치해서 거의 하루종일 음악을 틀어놓고 지냇다.

선박 교신용 VHF무선기의 공용 교신 채널 16번 소리와 함께 뒤섞이며 들리는 첼로의 오묘한 뉘앙스는 배를 탓던 나만이 느끼는 또다른 감상법이었다.




이러한 나의 취미에 연세가 많으셨던 선장님은 이해를 못한다고 했다. 하긴 트로트에 물들은 나이많은 영감탱이 선장님의 시각에선 매일 클래식이나 메디테이션만 틀어대는 내가 이해가 안되는것도 당연할 것이다.
간혹 짜증도 냈지만 선박내의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던 나였기에 선장님은 불평만 할뿐 포기를해버렸다.

운행지역은 수심이 얕은곳도 많아서 집중하지 않으면 좌초나 전복사고가 많은 지역이다.

조수(썰물과 밀물)의 차에 의해 바지선의 수심을 고려한 운항을 해야 했던 예인선은 한달에 절반은 조수의 차에 따라 날밤 운항을 해야한다.
적막과 고요함이 흐르는 어둡고 칙칙한 바다위에서 나는 비운의 천재 첼리스트 쟈클린 뒤프레의 곡들을 주로감상 했다.  

그녀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다발성 척추장애로 오랜 삶을 이루지 못하고 42세의 쨟은 생을 마친 쟈클린 뒤퓨레의 안타 까웠던 천재 연주자의 일생이 그려지며 애절한 선율이 나를 더욱더 첼로의 깊이에 빠져들게 하였다.

특히 나에겐 어두운 밤하늘의 유성처럼 짧고 또 빛났던 그녀의 연주는 혼자서 긴시간을 항해해야 하는 무료함을 달래줬던 것이다.

그런데 현악기중 가장 남성스러운 소리를 내는 이늠의 첼로 소리에 나의운명이 바뀔뻔 했다....

어느날 석재를가득싫은 바지선을 끌고 저녘 8시쯤께 어스름한 밤기운을 뒤로하고 출항을 했다.

그날은 선장님이 당신집 제사로 인해 자리를 비워 부득이 혼자서 배를 끌고 나와야 했었다.

자주다녔던 항해 길이라 혼자서두 할수 있다고 회사 담당자에게 안심시키고 광양 항무국에 출항 통보를 무선으로 전하고 허락을 받았다.  

출발점에서 현장으로 갈려면 광양 컨테이너항과 제철 원료 부두 앞을 통과 해야했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광양항 부두에 매여져있는 콘테이너선과 제강 원료를 싫고 들어온 광석 운반선들이 분주하게 하역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광양항의 휘황 찬란한 야경을 좌현에 끼고 정박해 있는 외항선들 사이로 곡예하듯 예인선과 바지선을

조종하면서 천천히 부두를 빠져나와 하동 화력 발전소 앞 까지 오게되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이 넘어 칠흙같은 어둠은 나의 마음을 더욱 움추려들게 하였다.

도착지 까지 갈려면 9시간의 연안 항로로는 긴항해가 필요한 길이었다.

나는 기존 다니던 길로 갈려면 4시간을 더가야 했기에 나름데로 빠른 길을 선택 했다.

그런데 그길이 내 인생 가장 잊지못할 악몽의 길이 될줄이야...

해도를 펼치고 섬과 섬사이 의 거리와 수심, 암초등을 확인하여 항로를 다시 잡았다.

자이로 컴퍼스와 레이더를 계속 지켜 보며 내가 새로 설정한 항로에 들어섰다.

그항로는 항해 시간을 약 한시간 반까지 줄일수 있었다. 마침 조류도 항로를 따라 올라가는

만조 때라 예인선의 속도를 더 증가시켜 도착 시간을 줄일수 있다고 판단하고 항로를 무리없이 고고싱.....

그런데 깜깜한밤 하동 화력 발전소의 야경을 앞으로 품어 안으며 작은 무인도인 (외도)를 막 스쳐 지나갈무렵

갑자기 쿠당탕 거리다 철판이 닿는 굉음을 내면서 배가 기우뚱 했다.

그순간 나는 좌초된걸 직감하고 재빨리 엔진을 정지 하고 브릿지 위에 설치된 써치라이트를 주위로 비쳐보니

세상에! 이런!! 니미럴........기어코...일이 벌어진 것이다.

예인선은 바닷속에 숨은 암초위에 얹혀버렸는지 약간 기울면서 꿈쩍도 하지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좌초해 버린 것이다.

다행히 예인선은 바지선을 끌고가면 운항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들기에 선저(배 밑바닥) 엔 별 영향이 없을것 같았다.

하지만 이눔의 바다속을 내가 어찌알랴 여자의 마음과 바다속 마음은 서로 사촌 지간 일게다.

바다속 숨어있는 돌기둥에 재수없이 얺혀지면 배 밑바닥은 갈기갈기 찟어질테고 침수로 인해 나는 배와함께

용왕님 만나러 가게 되는건 불보듣 뻔한데....

그나마 끌고오던 바지선은 예인선을 아슬하게 종이한장 차이로 옆으로 비켜나가 다른 암초에 걸렸다.

그순간 아이구 난이제 죽는구나하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 발만 동동 구를뿐........

다행히 예인선에 끌려오던 바지선은 가까스로 비켜 지나나가고 정신 차린후 다시 엔진을 시동하고 빠져나오려 애를 썼지만
60톤의 무게가 얹혀진 바닷속 암초는 배를 끝까지 놔주지 않았다....

그넘의 암초는 내 예인선이 무척이나 존경스러웠던 모양이다....
몇번의 전 후진 작동을 시도 했지만...

엔진은 나살려라 굉음아닌 굉음만 뿜어대고 예인선 뒤에서 뻘물만 가득 일으킬뿐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더더욱 나를 불안케 만든것은 배가 차츰 왼쪽으로 기울어 진다.
나는 위치라도 확인 할려고 해도를 다시 확인 하여 위치를 찾았더니 플로터의 모니터엔


이럴땐 통상적으로 조난 구조 신호를 보내야 했지만 그러면 선장없이 운항한 사실이 밝혀지고

선주나 선사에 막대한 피해는 물론 나 자신도 해양 심판원에서 재판 받고 구속되는건 뻔한 일이어서 조난 통보를 하지 않았다.
이길은 첨으로 항해하는 항로라 해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암초를 몰랐던 겄이다.

그리고 그넘의 첼로 음악에 취한 나머지 내가 설정한 항로를 비켜나가는것을 잠시 깜빡했던 것이다....

죽어도 싸징..

그러나 내가 누구냐... 그동안 이런저런 선박생활로 산전수전 다겪은 넘인데 .......
우선 나는 선박내에 물이 새는곳이 없나 기관실이랑 선실이랑 구석구석 캄캄한 곳까지 더듬어가며 확인해보니 아직 까진
이상이 없는걸 확인하고 우선 나와 친분이 있던 타 선박의 선장에게 무선 교신을 했다.
가까운곳에 그선장이 있으면 구조 요청을 해볼려고 했었지만 그 선장님은 너무 먼거리라
올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설정한 그항로는 만조(밀물이 최고조인 시기)때만이 항해가 가능한 지역이고 좀처럼 그길로 항해 하지 않는게 원칙 이라는 말만 남겨두고 교신을 끓었다.

이넘의 선장은 내가 생사가 오락가락 하는데 왜 그리루 갔냐고 오히려 핀잔만 준다...
나는 원망 섞인 말만 혼자서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만조(밀물)시기를 기다렸다.

혹시 밀물로 수심이 높아지면 배가 뜰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느르이 뜻에 모든걸 맏겼다......

그리고 그때 첨으로 믿지도 않는 하느님께 기도 했다 제발 살려 주시라고...
살려주시면 아프로 차카게 살겠다고 몇번이나 기도했다...
만조(밀물이 끝나는 시점)가 될려면 3시간을 더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곳은 조류가 쎈곳이라 암초에 걸리면 조류에 의해 배가 전복되는 일이 허다한 곳이기도 했다.


대형 파도에 전복되는 어선



그런데 만조가 될수록 떠줘야할 배가 자꾸 기울어지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엄습하는 두려움에 몸을 벌벌덜며 하느님께 기도 했다.
훤한 대낫도 아닌 어두운밤에 좌초된 배위에서 홀로 있다는걸 생각하니 견디기 어려운 악몽이 되었다.

배가 전복되면 빠른 물살에 휩슬려 살아나지 못한다는걸 이미 89년 진도 대교에서의 전복사고에 경험을 해서 더욱 두려움이 나의 가슴을 죄어왔다.

그당시도 1명의 실종자를 남겨두고 나와 둘이서만 가까스로 살아났는데 또다시 이런 사고를 겪게되니 정말 하느님도 무심하단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포기 할수 없었다.
수십억의 재산을 운용하는 기관장으로서의 책임은 다해야 했다.

그래서 기울어진 배를 다시 세울려면 발라스트(선박의 좌우 균형)를 조절해야 한다는 경험이 있던터라.

나는 기관실로 가서 BOTTOM TANK (선저 탱크-주로 연료를 저장 하는 탱크)에 들어있는 엔진 연료를 SIDE TANK(좌우현에 위치한 연료 탱크)로 펌프로 이송했다.

절반쯤 이송 했을까..........
하느님 만만세..........
마침내...........
기울던 배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선다..........

기울어진 배와 사투를 벌이는동안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멀리 어슴츠레 (둥글섬)이
바로 앞으로 보였고 그뒤로 대섬이 조금식 보이기 시작하더니 하동 노량과 남해 노량을 이어주는 남해 대교가 새벽녘 안개를 감싸 않고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밀물이 다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끌고왔던 바지선에서 선두(바지선 선원을 선두라 지칭)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사고의 충격에 미처 선두에게 연락을 안했던 것이다.
선두는 다행히 바지선을 잡아주는 앵커를 내려놯다고 하며 한시간 후면 배가 뜰거라고 전해줬다.

기다렸던 한시간이 일년만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반대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이제 됐구나 하고 다시 이송했던 연로를 원위치 시켰다.
그러더니 조금후에 배는 항해 가능한 흘수선으로 회복되서 암초를 빠져 나오게 되었다.......

순간의 방심과 자만심이 생명까지도 위협받을 사고를 일으켜 나는 그이후론 아무리 음악도 좋치만 근무중엔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

지나간 쓰린 추억이었지만 이젠 쟈클린의 첼로연주는 그런 계기로 인해 내가 가장 아끼고 즐겨듣는 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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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ll 글을 참 잘 쓰시네요...좋은글입니다.
2008-12-05
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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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SHIP쟁이 ㅋㅋㅋ 걍 웃다가 갑니다
2008-11-26
16:11:05

[Delete]
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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